가은교회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가은교회입니다. 박바울 목사 시무

가은교회

Reality Of Gospel

커뮤니티

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 > 커뮤니티
커뮤니티

매주의 말씀 / 4월 4일 - 10일(15주)

조회수225

2021-04-12

우리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깨닫고, 체험하면서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가지 못하면, 십자가만 점점 빠져 나간, 종교적인 은혜가 되어 버리더라고요. 물론 모든 것이 은혜지만 모든 것이 은혜가 될수 밖에 없는 실제, 구원의 은혜 속에서 은혜가 되지 않은 것은 다 절도요 강도 거든요. 어제 여러분들 우리 사모의 간증을 들으시면서 뭐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말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 들었어도 인생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죠. 길이,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저에게 구원의 감사와 기쁨과 그 충만함을 주셨던 만큼 그때 부터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인생을 완전히 올인 했죠. 성격적인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바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신 만큼 구원의 은혜가 믿음으로 살아지는 실제 속에 나와진것도 있는데 이미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것이 내 수준을 통해서 나타나는 야곱의 수준이 어제도 느껴지셨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들으시면서도 느끼셨겠지만, 저는 저대로 야곱으로 살아가는 내 수준의 문제가 하나님이 은혜 주신 만큼 믿음으로 살아지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내가 살아본것이 아니잖아요. 문제는 내가 야곱으로 살아왔던 이 수준이 같이 드러나다보니까. 맞는 목적으로 몰아 간겁니다. 그러니까 제 인생에 길을 돌아 보면 정말 야곱과 똑같아요.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똑같아요.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뭐라 말씀 하셨습니까?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깨지고 터지고 상한 흔적 밖에 없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 모습이거든요. 개인의 인생 모습으로 보면 야곱이 똑같아요.

 

참 야곱을 말할때 이전에 말씀 드렸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그랬는데, 쌍태가 생겨서 더 심해졌죠. 비슷한 대상. 나올때도 처음 발목 붙잡고 나온것이 야곱이고, 그런 인생을 살아 가면서 야곱으로 사는 인생, 성경이 그대로 가감없이 사실적으로 증거해 준것이 너무나 감사한 거예요. 맨날 야곱으로 사는 인생은 에서에게 도망치고, 라반에게 도망치고, 에서와 그의 400명 군대에게 맞서야 되고, 또 세겜 땅에서도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 때문에 또 도망 쳐야 하는 인생이에요. 이게 야곱의 평생 인생 길이거든요. 134살. 바로의 왕 앞에 섰을때, 네 나이 몇이냐고 물을 때 130 이라고 말하면서 험한 나그네 길을 왔다고 고백 합니다. 여기에도 참 굉장한 의미가 있어요. 그 말을 고백한 대상이 누굽니까? 에굽 왕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 그때 까지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속에 하신 일이 구원의 일인데,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는 것 처럼 믿음으로 야곱은 130 바로왕 앞에 섰을때 짧은 고백 속에서 믿음을 볼수 있어요.

여러분 그때 당시 애곱이 세계를 정복하던 시대인데, 그럼 그 나라의 왕이라고 하면 얼마나 높여진 자입니까? 그 앞에 네 나이 몇이냐 물을때에, 내 나이 130 험한 나그네 길을 왔다. 자신의 인생 길에 연약하고 부족하고 그런 만큼 수치와 같은 인생의 모습을 그 한 마디 속에 험한 나그네 길을 왔다라고 고백할수 있는, 이게 능력의 삶입니다. 연약함이 수치가 될수 없고, 부족함과 세상이 선악의 기준속에 보는 그런 기준속에 이미, 상관없는 믿음으로 살아지는 야곱의 모습을 바로왕 앞에 야곱의 고백을 통해 느낄수 있는 겁니다. 이게 살아지는 실제 ‘믿음으로’가 단순한 말이 아닌 살아지는 실제가 말을 통해 진실한 고백이죠. 뿐만 아니죠. 대단한 왕을 처음 만났는데 그것도 자기는 인생의 험한 나그네 길을 왔다고 하면서 그 나그네가 무슨 왕을 축복합니까? 이게 말이 안되는 거거든요. 이게 영권에요. 이게 믿음의 능력이라고요. 우리 실제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보면 없으면 없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우리 수준에 묶여 살잖아요. 내 수준과 그런 수준으로 살아가는 내 기준에 묶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 만큼은 그 연약함이라고 수치라고 말도 못하지만, 말을 한다 할지라도 이미 그 그늘아래 그게 어둠이거든요. 사망의 그늘아래 살아가는 이게 종노릇하는 살아가는 인생의 자신의 수준 기준의 묶임의 인생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말로만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주 예수의 구원의 능력. 여기에는 십자가가 없을수 없어요. 십자가 아닌 것은 구원이 없기 때문에요.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이후의 믿음으로 를 하나님이 우리 인생속에 주신 구원의 은혜가 맞다면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에 참여된 만큼 야곱으로 살던 우리 수준과 기준의 묶임 속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 시켜 가는 오 자유! 이렇게 살아지는 삶이 능력의 삶이에요. 여러분 병 들었을때는 병 때문에 고통 당하다가, 병이 나으면 자유하죠? 여러분 그것은 불교 속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수 있어요. 천주교 속에도 얼마든지 많고, 심지어 무당에게 찾아가서 굿을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수있어요. 여러분 그것이 구원의 은혜입니까? 우리가 정말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뭐가 달라야 됩니까? 주 예수의 은혜를 받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조금씩 이라도 실제 구원의 능력에 살아지는 믿음과 삶의 모습이 점점 그렇게 살아지는 실재로 그게 능력입니다.

2020.08.14 함께하는 여름 수련회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