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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가은교회입니다. 박바울 목사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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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의 말씀 / 5월 2일 - 8일(19주)

조회수364

2021-05-03

[창35:14-15]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라반의 집에서 20년, 숙곳 세겜까지 다시 벧엘로 오기 까지 10년.. 30년 전에 벧엘에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죠? 30년 만에 다시 벧엘로.. 이름을 똑같은 벧엘인데, 여기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 하시던 곳에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30년 전에 야곱이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오늘 본문 30년 이후에 벧엘이라고 불렀더라. 뭐가 다를까요? 벧엘이라는 뜻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구나.

제가 말씀 드렸죠. 야곱이 잠잘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내셨던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한건데, 30년 동안 야곱의 인생속에 하신 일이 뭐에요? 꿈같은 영적 세계의 실상이 믿음으로.. 야곱은 육에서 영으로 그럼 똑같은 벧엘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거죠. 여러분 속에 그동안 살아온 인생 돌아 보시면 그렇게 발견될 겁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 속에 구원을 이루신 만큼, 여러분이 10년 20년 전에 내가 불렀던 예수 그리스도와 지금도 그 이름이 똑같은데 다르죠. 지금은 어떻게 보면 우리 수준 속에 알던 예수 그리스도를 이전에 확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준속에서 보면 더 모르겠는것 같을수도 있어요.

앞서 말씀 드렸지만 우리는 이미 육체로 살아왔어요. 육신이 다인것 처럼 살아왔던 자들이기 때문에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은데 어떻게 육이 영을 찾아가겠습니까.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와 주신 최고의 신비가 임마누엘이에요. 어떻게 하나님이 육체가 된 우리에게 찾아올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죽고 사는 그게 영적인 거듭남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육신의 기준을 가지고 보면 형편없죠.

내가 우리 갑순 목사님을 가끔 가다 보면, 자기는 모를 거예요. 하~ 하~ 여러분도 보시죠? 저는 알죠. 저도 이전에 그럴때도 있었고 이전 보다 다르죠. 한번은 중국에 선교할때 친구 선교사 집에 갔어요. 사업장이요. 덕담을 나누는 가운데, 옆에 있던 사모가, “아니 선교사님은 자꾸만 한숨을 쉽니까.” 나는 몰랐어요. 가만히 인식이 되니까. 내가 진짜 한숨을 많이 쉬더라고요. 그 다음 부터 바꿨어요. 그냥 쉬면 안되겠구나. “주여~” 해도 한숨은 한숨이잖아요. 왜 그런가 했더니만, 기가 빠져 나가는 거예요. 내가 부인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적으로 보면 안 좋은 거예요. 육신은 자꾸만 기를 넣어 줘야하는데, 그래야 육신은 힘이 생기니까. 물론 나도 모르게 주여 하며 빠져 나가는 거니까. 기운이 더 없어지잖아요.

어젠가 식사를 하러 가는데 이 전도사님이 끌어 안아요. 대단한 목사님 기를 받아야 한다고, 가만히 보면요. 복음은 정말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인생속에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이에요. 저도 제 수준속에서 깨달아가는 만큼 해야 되는것 처럼 증거했잖아요. “죽어라.” 또는 “왜 살리냐.” 예슬이가 그러더라고요. 살리면 죽는 일이 온다는 것을 아니까. 잡힌거야. 안 살리려고. 그건 막 살리려고 하는 거나. 안 살리려고 하는 거나 똑같은 거예요. 다 우리 수준의 문제거든요. 제가 말씀 드리잖아요. 복음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와 상관없이 구원의 일은 살아가고 있거든요. 살아가는 인생이 다 뭐냐 하면 육신 속에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만큼 부담이에요. 고난 이에요. 나를 부인하게 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거든요. 이것을 영으로! 육신을 의식하면 하는 만큼 믿음의 과정을 내가 가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살리려고 하는것도 고통이고요, 그런 만큼 더 살리고 싶어요. 또 살렸다! 아는 지식은 살린만큼 죽는 일이 찾아온다는 것을 아는 만큼 잡혀요. 또 안살리려고 하는 만큼 얼마나 고통을 당하겠어요. 그러나 저는 이것 까지도 복음은 우리 수준은 소망이 없음을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내주시는 거잖아요. 속힘이 뭔지 몰라도 속일수없는 사실로 내 인생을 드러내주심 나타내주심 속에서 이 세계 한계와 고난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것 까지도 또 너 왜 그러냐 하는 겁니다. 가만히 두는 겁니다. 결국 복음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 구원이고 또 내가 아는 만큼 아직도 나로 믿어 왔고 살아왔던 나는 이래도 저래도 하는것도 안해야 하는것도 어찌할수없는 한계 속에서 조금씩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겁니다.

2020.08.14 함께하는 여름 수련회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