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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의 말씀 / 8월 8일 - 14일(3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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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8

[출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 되어" 이게 단순한 모세 자신의 상태의 고백만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의 인생속에 애굽에서 광야로,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있는 것이잖아요. 모세가 그렇게 깨달아 간겁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모세가 믿었는데 성경은 믿음으로 모세는 이게 복음이에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십시오. 제가 한번 물어 볼까요?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낳고 삼개월 동안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수가 없어서, 갈대상자를 만들어 거기에 모세를 담아 하수에 띄웠는데요. 갈대상자라는 말의 단어가, 창세기 6장에 방주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라고,

우리는 어떻게 믿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었어요. 언약을 깨닫고, 언약을 내가 붙잡아야 되고 그래서 저 언약 속에 나를 집어 넣으면 하나님이 이렇게 할것이다. 그러면, 모세의 부모가 내가 믿던 그런 믿음과 같이, 노아를 통해 나타낸 방주가 언약이다. 그래 내가 삼개월 동안 길렀으니까. 도저히 할수없으니까. 갈대상자 만들어 언약 붙잡고, 거기에 모세를 담아. 그런 믿음 입니까? 저는 이렇게 보여져요. 모세를 낳기 까지 하나님이 모세의 부모를 통해 하신 일이겠죠. 그래서 제가 지난주 그 전주 계속 말씀 드린것 처럼 '믿음으로 모세' 만이 아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 부모의 인생속에 제가 이전에 믿었던 그러한 나의 노력속에 그렇게 했겠습니까? 지금은 제가 그렇게 보여진다니까요. 그냥,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숨겨 기르다 어찌할수없어서 갈대 상자 만든 거예요. 거기에 모세를 담아 하수에 띄운 거예요. 그게 모세의 부모 인생 이야기 거든요. 핏덩어리 모세, 모세의 부모만이 아니라, 모세의 인생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의 부모의 인생속에 복음은 그러한 인생속에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임을, 갈대상자로 나타내주신 거라고, 지금은 성경을 봐도 그렇게 보여져요. 그럼 내가 언약을 깨닫고 내가 언약을 붙잡고 언약속에 나를 밀어 넣고, 다 맞는것 같은데, 누가 해요? 내가!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만 구원인데, 그 분만 각 사람의 인생속에 항상 하시는 구원의 일인데, 그래서 제가 말씀 드렸죠? 모세의 부모도 자기 수준속에서, 그런데 복음은 우리 수준과 상관없는 구원의 일을 지금 모세의 부모를 통해 나타내시는 거든요. 아니 더더욱 모세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줄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이죠.

내가 말하죠. 몰라도 하나님이 은혜 주실자에게 은혜 주시고, 당신의 구원의 영광을 나타낼자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문제는 나타내면 우리가 골때려. 자기 수준 때문에. 육신속에서 깨닫는것. 육신속에 확인되어지는 것.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해요? 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그렇게 보여진다니까. 아니 왜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은 저들이나 나의 모습이 똑같은 것을 기록해 줬는데,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선악의 기준속에 믿다 보니까. 기준속에 몰아가는 만큼 쎄지고 수준을 높여가는 만큼 진리를 막고 있는줄 모른채 내 의가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는것만 모른채, 그래서 우리는 이것 때문에 쉽지 않은 겁니다. 아니요. 이제야 좀 바로 보여진다니까요. 노아와 그 시대 사람과 다른 겁니다. 분명 사람을 통해 나타내시는 것인데 은혜 거든, 노아 아니라 누구를 통해서 나타내는데 노아와 그 식구를 불러서 구원은 여호와, 누구를 통해 나타내실 일을 노아를 통하여,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건 노아 만이 아니에요. 모든 믿는 자의 인생 이야기가 육신은 다르지 않다. 똑같다. 신기하게도 육신은 똑같은 것을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을 가감없이 기록해 주고 있는데 왜 우리는 달라야 된다고 생각했지? 아니 그들 속에서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주신 만큼 믿음으로 살아지는 세계가 있음을 한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하신 것을 믿음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 마저도 내가 맞는 기준속에 나의 노력속에 그렇게 살면 믿음의 행위인줄 알고, 우리는 그런 기준속에서 볼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모세의 부모가 믿음이 좋구나 맞긴 맞는데, 뭐가 달라요? 내가 믿는 믿어왔던 기준속에서 개념 자체가 다른 거예요. 복음은 은혜 라고 하면서도 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몰라도 지금 우리는 '내가' 이게 골때린다니까. 그럼 알겠어요. 모세의 부모가 자기는 할수없어서 갈대 상자 만들었는데, 그 상자가 언약이다. 갈대 상자를 통해서 모세의 부모가 갈대상자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니까. 그들의 수준속에서 최선의 방법이었구요. 한계 속에 어찌할수없으니까. 거기에 뭐가 있어요? 이게 그들의 인생이야기인데 그런 인생 이야기 속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을 나타내주시는 그것을 갈대 상자에 담아,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럼 이게 조금 차이 같은데 아니에요. 하늘과 땅 차이에요. 길이 달라요. 우리의 길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 길이 달라요. 뿐만 아니라. 가면 갈수록 세계가 달라요. 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