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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가은교회입니다. 박바울 목사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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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의 말씀 / 8월 15일 - 21일(34주)

조회수295

2021-08-18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할렐루야! 잠깐 기도 속에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세상을 사는것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인생속에 이런 일이.. 지금은 대면 예배를 드릴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수련회 같은 것은 더 할수없는 그러한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한 것은 온라인을 통해서 중국, 미국, 캐나다, 일본, 대만도 같이 참여할것 같습니다. 외국에 계신 분들은 언제나 온라인으로 참여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예배와 수련회 차이일뿐이지 별로 다르지 않겠죠. 다만 특별히 우리에게 여름 수련회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특별 집회를 통해 주실 은혜의 정도는 다르게 나타나겠죠. 그런 면에서 한국에 계신 분들은 매년 여름이 되면 수련회에 함께 하면서 대면하면서, 말씀도 들으면서 은혜 받고, 또 식사와 함께 티타임을 나누면서 나눔속에 교제도하고, 그런 면에서 한국에 계신 분들은 아쉬울 것입니다. 그런 만큼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정말 마음을 새롭게..

물론 이미 여름 수련회를 통해 은혜 주시기 위해 여러분의 인생속에 준비하신 만큼은 이미 그렇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조금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일깨우십시오. 내 육신에게 지지 마시고, 나를 좀 처서 복종시키면서 이번 여름 수련회가 대면을 통해 은혜 받을수 없지만 갑절의 영감으로 역사해 주십시오. 증거되는 말씀이 내 안에 구원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시간 되도록 해주십시오. 그런 사모함과 그런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오늘 첫 시간 부터, 시간 시간 마다, 함께 은혜에 참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축언 합니다.

제가 여름 수련회를 기도 하면서 주제를 어떻게 잡아야 될까? 그런 중에 오늘 본문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하여 광야 교회의 축복 속으로, 몇일 전에 어떤 형제가 전화 와서 그래요. "목사님, 요즘 증거되는 말씀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어떻게 맞습니까?" 말씀이 살아서 살아가는 내 인생속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속에 그 말씀과 그대로 인정될수 밖에 없고, 믿어지는 그런 고백을 제가 들으면서, 그게 복이다. 이번 여름 수련회, 매주일 마다 증거되는 말씀이 연속성이 될것입니다. 마침 그렇게 됐잖아요. 이제까지도 하나님이 하셨던 일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속에 이번에 여름 수련회 주제를 잡았기 때문에 이제 부터 이 축복을 받겠다 이게 아니고, 모든 것은 구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늘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거니까, 은혜 주시면 구원 받을수 있죠. 그건 한 순간입니다. 그때 부터 하나님 나라 부를때 까지 믿는 자의 인생..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똑같아요. 우리는 이것을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삶이다. 그랬잖아요. 조금씩이라도,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만 하실수 있는 일이고, 지금도 하고 계신 일이고, 그러면, 사실 우리는 살아온 인생이 몰라도 그것 때문에 살아왔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는 것 처럼 보아도 볼수없어요. 깨닫지만 못해요. 그럼 어떻게 되냐? 구원의 때를 위하여 쌓여져 가는 겁니다. 그럴수록, 인생은 답이 없습니다. 잘될수도 있어요. 안될수도 있고, 답만 없어요. 몰라도, 구원의 때를 위하여 예배되어진 인생으로 쌓여져 가는 겁니다. 그런 만큼, 보라!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 사실 하나님은 항상 하셨던 일인데 볼수없고 깨달을수 없었던 만큼,, 은혜 주신 만큼 그 인생이 구원의 계획으로 바뀌어지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주신 만큼 조금 우리 안에서 구원의 축복으로 느껴져요. 그러나, 그리스도가 어마 어마하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이, 그것이 우리 인생이 사는 능력임을, 은혜 주신 만큼 축복으로 체험되기 때문에, 그때 부터 우리는 별수없습니다. 은혜 받은 만큼 잘 믿으려고 해요. 은혜 주신 만큼 인생, 우리의 선악의 기준속에 맞고 잘 살아야되는 기준속에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생인줄 알고 틀림없이 노력하며 몰아갑니다. 그럼 똑같아요. 믿고 살아가는 믿는 자의 인생! 그게 내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그게 나였었어요.

그런 만큼 복음이 가리워지는 것만 모르고 불의로 행하는 만큼 내 의가 하나님의 의와 대립하는, 이게 십자가의 원수로 믿는 믿음 생활이었고, 나는 믿는줄 알고 살아왔던 인생이었거든요. 그럼 그때는 하나님이 침묵 하셨나? 아니에요. 그 분은 항상 그러한 일속에 드러내주시고, 불의다! 네 의로 사는 그것이 죄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는데 복음만 가리고 있는.. 그래서 은혜 받고 그렇게 잘 믿으려고 했는데 똑같이 답이 없음이 갈수록 나는 잘 믿는데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데, 신앙 생활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생속에서도, 똑같이 준비되어져 갑니다. 그러다가, 역시 우리는 다른거 없어요.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 그래서 제가 그런 말씀 드리죠. 몰라도 우리는 신앙 생활 속에 한계속에 바닥 치다가 은혜 받는다. 문제가 뭐냐? 또 우리 수준대로 확인 한다는 거예요. 육신 속에서 뭐 하나 은혜 받으면 내가 해서 은혜 받은줄알고 확인하고 또 해야 되는것으로 몰아가고, 낙심 가운데 은혜 받아도, 은혜 주신 만큼 살아나니까, 또 불의 로 행하는것만 모른채, 심지어 나는 완전히 넘어졌는데도, 하나님 외면하고 떠나 버렸는데도, 하나님이 은혜 주실수 있잖아요. 우리의 인생속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저만 넘어져서 시험들고 하나님 저주 하고 떠났을뿐이지,

그럼 어떻게 확인하는줄 아세요? 하나님 안 믿으니까 더 잘되네? 그래서 제가 그러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십시오. 감사하게도, 내 의 때문에 나 자신이 속는 줄만 몰라요. 그런데 복음은 속일수없고, 믿는 자의 인생도 속일수없기 때문에, 답이 없음이, 결국 한계 속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은혜 받아온 것이 뭡니까? 여러분 이 말씀에 은혜 받아오면서도, 많은 변화들이 있잖아요. 이제 한 오랫동안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변함없이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누구도 속힘의 우리 수준 속에서, 조금씩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면서 발견되는 것이 뭡니까? 조금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발견해 가죠?

저는 오늘 본문, 과거 같으면 몰라도, 하나님이 내 인생속에 찾아오셔서 구원하셨을때,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주신 만큼 누려지잖아요. 뭔지 몰라도 너무 좋은 거예요. 저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뭔지 몰라도 나에게도 주신 축복의 말씀으로 마음에 담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아직은 과정을 모르잖아요. 구원을 얻어가는 과정. 구원 못 받아서가 아니고, 이것은 아직은 잘 모르는 만큼은 뭔지 모를 이게 혼돈이에요. 이게 내 수준의 문제였어요. 그럼 그 수준은 다른거 없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부러운 거예요.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복을 받았을까? 솔직히 우리는 이방인 이잖아요. 이거 생각 하니까 얼마나 부러운 겁니까? 그런데 은혜가 누려지니까, 믿어지는 만큼은 이걸 땡겨 가지고, 내가 이스라엘이다! 나를 축복하신 거야! 그렇게 믿어야 되죠? 은혜 주신 만큼 사실 믿어지는 건데, 그 만큼 사실적으로 마음에 담아지는 건데, 육신속에서 내 수준의 문제를 모르게 되면 이쪽은 육신의 기준 때문에 이게 지금 이스라엘 선택 받은 민족와 이방인의 차이가 얼마나 큰줄 압니까? 뿐만 아니라 민족의 차이도 있고 이게 지금 어느때 얘기입니까? 지금 그리스도, 오시고 나서도 2천년 지났는데 이건 몇천년 지났는데 이 갭을 피할수가 없어요. 육신속에, 그래서 부러워하고 아니면 땡겨서 육신에 내가 이스라엘에 받은 축복 하나님이 나에게도 주신 거예요. 종교적, 신념적, 그럼 그게 내 자부심이 되요. 자긍심이 되요. 그게 내안에 종교적인 확인이 되요. 결론은 내야죠. 나는 복 받은 자.

그럼 그게 틀린 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맞아요. 그런데 모세 때 이 이스라엘 민족, 아브라함 자손,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이 설교하면서 이 광야길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광야 교회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몰라요. 참 그리스도 안에서는 맞는 거라니까. 암만 그것을 내 기준속에 땡겨서 내 안에 그런 복음을 만들어도, 내 인생은 속일수없어요. 그런 만큼 이게 아브라함 자손,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이면서, 사실은 교회에 주신 축복이거든요. 오늘 나에게 주신 축복이거든요. 그런데 내 인생만 안 맞아요. 그래서 저도 돌아 보면 구원은 한순간이잖아요. 이걸 광야 교회를 통해서 출애굽, 구원을 그림자로 보여준거예요. 건져내심. 그 이후에 뭐에요? 광야 40년이게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의 개인도 교회도 광야 교회의 모습을 저들을 통해 그림자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전에 LA에 교회 이름을 지을때 광야 교회라고 했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첨에 제 마음에 그런게 있더라고요. 거친 광야잖아요. 광야 보다 가나안이 낫지. 저를 보게 하시더라고요. 내게도 아직도 그런 부분들이, 육신에 세계에 반응 어찌할수없이 있을수 밖에 없구나. 지금은 가은 교회 기도처가 됐으니까, LA가은 교회로 바꼈습니다만은 사실 그게 맞습니다. 광야 교회. 이름이야 다른 이름 써도 되요. 사실은 사도행전에 증거해주잖아요. 구약인데 광야 교회라고 하잖아요. 이게 이스라엘의 민족의 이야기면서 그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역사다. 구원 이야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중요한데, 왜 중요하냐? 이스라엘, 아브라함 자손을 보면서, 복음,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저 이스라엘이 복을 받은 것이구나! 거기에 택하심이 있고 부르심이 있고 출애굽 부터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까지 구원의 서정. 구원의 과정을 얼마나 잘 그림자적으로 나타내 줍니까? 저도 이 부분이 풀수없던 갭이죠. 조금씩이지만 저 광야 교회 40년을 통해 나타냈던 광야 교회의 축복속으로, 이 갭이 나와 상관없이 풀려지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그런 만큼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함께 하는 수련회 1강